파쿠르는 무엇인가? 기원과 역사

마스터코치 김지호
2022-11-17
조회수 231

동물의 움직임을 닮은 파쿠르 기술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파쿠르의 시작 지점을 어디서 찾아야할까?

 지형지물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파쿠르의 모습을 보자면, 마치 성룡의 액션영화를 방불케한다. 인류가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 그리고 아마존 정글의 원주민들의 절벽을 타고, 나무를 오르는 움직임과 유사하기도 하다. 무협지에 나오는 축지법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파쿠르가 아닐까하고 상상해 보기도 한다.



 가까이에는 어린시절 누구나 놀이터에서 장애물을 넘거나 학교 담벼락을 넘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에는  스스로 자각하지 못해도 지형지물을 극복하는 파쿠르를 본능적으로 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러한 활동을 그만두게 된다. 여담으로 길거리에서 파쿠르를 하다보면 지나가던 행인들이 “파쿠르를 왜 하나요?”라는 질문을 하는데 농담삼아 파쿠르하는 사람들 끼리 이렇게 되받아치고는 한다. “당신은 그럼 언제부터 파쿠르를 그만두었나요?”


무성영화 시대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의 스턴트 


 파쿠르 역사를 탐구할 때, 그 시작 지점을 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파쿠르가 인류의 ‘보편적인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걷고, 뛰고, 달리고, 매달리고, 균형잡고, 올라가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인간이 장애물을 직면하게 됐을 때, 특별한 교육이나 선생님이 없어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움직임의 영역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쿠르의 근본적인 움직임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이미 존재해 왔고, 시대적 상황과 목적에 따라 형태가 달라져 왔다. 때로는 무술에서 혹은 예술에서, 영화, 놀이에서도 발견된다.


한국의 전통무술 ‘정도술’에는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출하술, 성벽을 타는 출상술이 존재한다


 따라서 파쿠르를 스포츠인지, 예술인지, 무술인지, 놀이인지, 체육인지 분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며, 분류한다고 하더라도 파쿠르의 전체성과 확장성을 하나의 관점으로 제한하게 된다. 실제로 파쿠르를 개념화, 정의내리기 어려운 특성 때문에 파쿠르의 명칭만 하더라도 'Art du Deplacement, Parkour, Freerunning'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려왔다. 어쩌면 '파쿠르는 무엇인가?' 라는 본질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가 어떤 현상을 인식할 때, ‘파쿠르’라고 인지할 수 있는 것은 파쿠르가 다른 어떤 것과는 다른 고유한 정체성, 즉 파쿠르의 ‘본질’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파쿠르에 영향을 준 다양한 매개체, 상징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복잡하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파쿠르’라고 인식하는 움직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밀접하게 관계된 사건과 인물들을 중심으로 서술해볼까 한다.



1980's ~ 1996 : Le Parcours

 현대 파쿠르는 1980년대, 프랑스 파리(Paris) 인근의 교외도시 에브리(Evry)와 사르셀레스(Sarcelles)에 거주하는 9명의 청소년들에 의해 시작됐다. 9명의 창시자들은 다음과 같다.


데이비드 벨(David Belle)

세바스티앙 푸칸((Sébastien)

차우 벨 딘(Chau Belle Dinh)

윌리암스 벨(Williams Belle)

말릭 디우프(Malik Diouf)

얀 노트라(Yann Hnautra)

로랭 피에몬테시(Laurent piemontesi)

갈레인 엔구바 보옉(Guylain N'Guba Boyek)

샤를 페리에르(Charles Perrière)


 당시 프랑스는 이민자들이 대거로 유입되던 시기였고, 그에 따라 파리 주변에 이민자들을 위한 위성도시들을 건설됐다. 에브리(Evry)는 거칠고 단단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신도시였고 무슬림, 힌두교도, 흑인, 아시아인 등 다양한 종교, 인종,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거주했다. 그 때문에 사회적 갈등과 충돌이 잦았다. 길거리 싸움, 공공기물 파손, 방화, 도시형 빈곤문제, 범죄가 끊이지 않았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청소년들은 내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이웃들을 지키기 위해 강인해져야만 했다. 이들은 돈이 없었기 때문에 무술도장이나 체육관도 갈 수 없었고, 길거리에서 강해지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아직 ‘파쿠르’라는 이름도 없었고, 오늘날 우리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기술, 움직임도 없었던 그 시절, 모든 것의 시작은 생존을 위한 단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강해져라(To be strong)'



 강해지기 위해 9명의 소년들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고,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극한의 상황에 도전했다. ‘내가 저 개울가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여기서 에펠탑이 있는 파리까지 쉬지 않고 달려갈 수 있을까?’ ‘저 아파트를 아무 장비 없이 맨손맨몸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팔굽혀펴기 몇 개나 할 수 있을까?’ ‘지금 2.5m 높이에서 1,000번 뛰어내릴 수 있을까?’

 매우 힘들고, 엄격한 훈련 모습을 상상하기 쉽겠지만 모든 것은 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모험적인 놀이에서 시작됐다. 누구나 어린시절에 친구들과 놀이터 혹은 자연 속에서 뛰어 놀면서 ‘너 저기 뛰어 내릴 수 있어?’ ‘저기 올라가보자!’ 같은 즉흥적인 모험을 즐겼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어린 시절 즐겼던 모험 놀이를 관두었지만, 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모험 놀이를 계속했다. 창시자들은 끊임없는 도전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실패, 시행착오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육체와 정신을 단련할 수 있었고, 오늘날 파쿠르의 모태가 되는 풀뿌리 움직임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청년으로 성장하자, 파쿠르 창시 과정에 있어서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그들의 친인척들과 가족들이었다. 특히 뉴칼레도니아 출신의 얀 노트라의 가족은 전통적으로 군인들을 배출한 집안으로 엄격한 군사 트레이닝들을 파쿠르에 가져왔다. 세바스티앙 푸칸의 친형은 올림픽 육상 국가대표 선수였으며 그는 형의 영향을 받아 육상 기술과 달리기 주법, 스포츠 트레이닝, 코칭법을 파쿠르에 가져왔다. 데이비드 벨의 아버지 레이몽 벨(Raymond Belle)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엘리트 소방관이자 군인이다. 그는 베트남계 프랑스인으로 어린 시절 베트남에서 분단으로 부모님과 헤어지고, 프랑스군에 소년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전투에서 살아남았다.

이후 프랑스 파리의 구조대원으로 활동하고, 군인 및 소방 대회의 로프 클라이밍 챔피언이 되면서 프랑스 엘리트 소방연대 팀에 들어가게 된다.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구조 활동들을 성공해내면서 그의 영웅적인 행보와 용기, 희생정신, 이타주의는 당시 프랑스 젊은이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었다.


Raymond Belle, 1939~1999


 레이몽 벨은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수련체계 ‘Le Parcours'(길, 코스, 여정, 道)를 만들어 자신의 아들 데이비드 벨과 친구들에게 전수했다. 이는 어린 시절 군사학교에서 배우고, 전쟁터에서 터득한 조지 에베르(George Hébert)의 자연훈련법(la méthode naturelle)에 바탕을 둔 것이다. 조지 에베르는 프랑스 해군 장교이자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의 자연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체육 교수 및 학자로서 갑판 생활을 하는 선원 및 해군들이 체력저하로 고통 받자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아프리카(콩고) 링갈라 부족의 생활양식을 관찰한다. 링갈라 부족 원주민들은 체육교사, 체육관이나 프로그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먼 거리를 창을 던지고, 나무를 타고, 절벽을 오르고, 개울가를 뛰어넘는 등 놀라운 신체능력을 발휘했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달리기, 구르기, 매달리기, 균형잡기, 들어올리기, 던지기, 수영, 자기방어 등 맨손맨몸 운동으로 전신 발달을 꾀하는 체력 프로그램을 완성한다. 이 뿐만 아니라 조지 에베르는 자연훈련법의 철학 및 정신적 가치도 완성하게 되는데 그 계기는 다음과 같다.


1955년, 자연훈련법 다큐멘터리


 1902년,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서 큰 화산 폭발이 발생하여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조지 에베르를 비롯한 해군들은 인명구조 활동에 파견된다. 그 과정에서 조지 에베르는 어떤 주민들은 너도나도 살기 위해 서로 밀치고 배를 빼앗고, 생존 경쟁을 벌이는 반면에 어떤 주민들은 아버지가 딸을 위해,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희생하고,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양보하는 이타주의적인 모습을 보았다. 결과적으로 화산 폭발의 재난 상황에서 이타주의를 실천한 무리들이 더 많은 생존을 했다. 여기서 그는 한 가지 통찰을 얻게 되는데 재난, 극한의 위험 상황 속에서는 경쟁보다 공감, 상호연대, 협력, 상생하는 이타주의야 말로 위기를 극복할 핵심 가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이타주의는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용기와 정신적, 신체적 강인함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였고,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정한다.


‘유용해지기 위해 강해져라(Etre fort pour etre Utile - Be strong to be useful)'


 이는 자연훈련법의 핵심 가치로서 후일 파쿠르 수련자의 마음가짐, 가치관으로 계승된다. 9명의 청소년들이 레이몽 벨을 만난 것은 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단순히 개인의 경험과 자기중심적인 ‘강해져라(To be strong)'에서 보다 확장되어 ’어떻게 강해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찾은 것이다. ’유용해지기 위해 강해져라‘는 개인의 생존뿐만 아니라 공동체, 사회, 세상과 연결되는 언어로 확장된다. 이외에도 1980~90년대 청소년들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것은 건물과 장애물들을 자유롭게 뛰어넘는 성룡(Jackie Chan)의 액션영화, 마블 및 DC코믹스의 스파이더맨, 배트맨 같은 히어로 애니메이션이다. 실제로 9명의 창시자들은 청소년기에 파쿠르 수련을 통해서 불의에 맞서고, 타인을 돕는 도심 속 영웅을 꿈꾸었다. 그들은 심지어 파쿠르에 온 인생을 헌신하기 위해 자유를 가로막는 학교를 그만둔다.



1997~ : L'art du Deplacement | Yamakasi

1997년, 야마카시(Yamakasi) 그룹


 마침내 1997년, 9명의 창시자들은 ‘야마카시(Yamakasi)'라는 팀을 결성한다. 팀 이름을 정하는데 있어서 구성원들이 많은 고민을 했는데 그 이유는 9명 모두 인종, 배경, 문화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함께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콩고 출신 갈레인 엔구바 보옉이 팀 이름으로 야마카시(ya makási)를 처음 제안했으며, 콩고 링갈라어(Lingala)로 강인한 영혼, 강인한 육체 - '초인‘을 뜻하며 링갈라 부족이 전쟁터에서 전투 시작 전에 외치던 구호였다. 9명 모두 ’강해지기 위해‘ 모였던 만큼 이견 없이 동의했다.

 

 야마카시 팀은 2001년, 뤽베송 감독의 눈에 들어 영화 ’야마카시‘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모험놀이, 육상기술, 자연훈련법, 군사훈련 등의 육체적인 요소와 그 시대의 대중문화, 가치관, 사회문제 등이 비빔밥처럼 뒤섞여 새로운 움직임의 첫 단추가 엮인다.

야마카시 팀은 자신들이 하는 움직임에 첫 이름을 붙인다. '움직임의 예술(L'art du Deplacement)'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파쿠르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에 도시 장애물들과 상호작용하는 움직임을 지칭하는 최초의 명칭이다.



1998~ : Parkour | David Belle

 그러나 1998년, 데이비드 벨은 자신의 아버지 레이몽 벨의 유산과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움직임 스타일과 철학을 더욱 드러내고, 영화배우로서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불어 일반명사로 길, 코스, 여정 이라는 뜻을 지닌 Parcours에서 c를 k로 대체하고 묵음 s를 삭제하여 Parkour라는 명칭을 만들고, 야마카시 팀을 탈퇴하여 독자적인 길을 간다.


데이비드 벨 인터뷰 


 데이비드 벨에게 있어서 파쿠르는 엘리트 소방관이자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탈출, 혹은 추적하는 실용적인 이동기술이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파쿠르에 대한 정의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파쿠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파쿠르는 출발지점 A에서 목적지 B까지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이동기술이다.’


2004년, 영화 13구역은 데이비드 벨이 세계적인 배우이자 ‘파쿠르’라는 명칭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03~ : FreeRunning | Sebastien Foucan

 2003년 세바스티앙 푸칸은 영국 Channel4 다큐멘터리 ‘점프 런던(Jump London)'에 출연하면서 ’자유롭게 달리다‘는 의미의 프리러닝(Freerunning)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사용한다. 이는 기존의 불어에서 파생된 Parkour 혹은 L'art du Deplacement라는 명칭 대신 영미권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데이비드 벨의 엄격한 파쿠르에 대한 접근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못했던 세바스티앙 푸칸과 새로운 움직임 세대들은 자기표현과 예술적인 요소를 입혀 프리러닝을 새로운 스타일로 정립한다.


 프리러닝은 엄격한 실용주의 노선에서 탈피한다. 단순히 이동 목적으로만 수련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과 사물들을 이용해서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카포에라, 기계체조, 아크로바틱 등 타 장르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고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나간다. 점프 런던 다큐멘터리가 영국, 미국 등에서 널리 인기를 끌면서 기존의 단순했던 파쿠르 동작들이 브레이크 댄스, 카포에라, 아크로바틱, 기계체조, 서커스, 길거리 예술 등과 융합되어 보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움직임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세바스티앙 푸칸의 좌우명에서 드러난다.


‘Follow your own way (자기 자신의 길을 따라가라)’


 어떤 외부의 스승, 신념, 이념, 기준, 규칙, 가치, 믿음을 따라가게 되면 자기 자신대로 살지 못하고 그것에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 외부에서 어떤 진리를 찾거나 따라갈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의 고유한 것을 추구하고, 갈고 닦으라는 의미다. 그리하였을 때, 자유롭고 독립적인 움직임,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다.

 초기 프리러닝의 등장으로 인하여 움직임의 예술, 파쿠르, 프리러닝 사이에 정의와 개념의 모호함, 철학적 분쟁이 있었으나 시간이 흐른 오늘날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름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역사와 흐름을 공유한 움직임으로 동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프리러닝은 수련자 개개인에게 자유롭게 움직일 권리를 주었으며, 파쿠르 관련 상업화와 창조적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비공식적인 통계 추산에 의하면 파쿠르는 전 세계 약 300만명의 청년들이 즐기는 대중적 움직임이 되었다. 유튜브 조회수 및 컨텐츠 수는 스케이트보드, BMX 등 익스트림 스포츠 중 파쿠르가 가장 상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영국은 세계 최초로 파쿠르를 공식 스포츠로 지정하였고, 스포츠잉글랜드(SportEngland)에 의하면 영국 내에 매 주 1회 이상 파쿠르 활동을 하는 인구는 약 10만명으로 집계되었다. 덴마크에는 파쿠르 공원이 200여개 설치 되어 있으며, 미국은 파쿠르 체육관 수가 130개로 집계된다.


 2018년 12월3일, 전 세계 기계체조 단체를 관할하는 국제 체조 연맹(FIG)은 파쿠르를 8번째 기계체조 종목으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매년 국제 체조 연맹 배 파쿠르 월드컵 개최와 4년 단위 파쿠르 챔피언쉽 개최, 그리고 2024년 파리 올림픽에 파쿠르를 정식 종목으로 올림픽 추진위원회에 채택을 추진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탈근대적(포스트모더니즘)인 파쿠르가 경쟁, 기준, 점수, 비교, 표준화를 중시하는 근대적 스포츠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파쿠르/프리러닝/움직임의 예술 그 자체는 태연하게 아무 말 없이 있는 그대로 있을 뿐이다. 단지 찾아오는 손님들에 의해,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 의해 덧 대여질 뿐이다. 교육으로서의 파쿠르, 동호인들의 파쿠르, 스포츠로서의 파쿠르, 예술로서의 파쿠르, 미디어로서의 파쿠르는 각각의 붓을 들어 파쿠르에 색깔을 칠한다. 그만큼 파쿠르에는 무한한 잠재성과 자유로움이 있다. 지금도 파쿠르는 계속해서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국내 파쿠르 역사 타임라인

2003. 2월.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 파쿠르 방영 : 한국에 파쿠르가 처음 소개됨. 

2003. 4월13일. Daum 카페 ‘한국 야마카시 동호회’(야마카시코리아) 오픈 – 한국의 첫 인터넷 파쿠르 커뮤니티.  

2003. 12월5일. 영화 ‘야마카시’ 개봉. 10대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


2004. 4월24일. Daum 카페 ‘하트비트’ 오픈 – ‘파쿠르(parkour)’ 명칭 및 개념을 한국에 처음 소개. 

2004. 12월. 연예인 ‘정시아, 한국인 최초로 야마카시 창시자들과 훈련’.


2006. 7월18일. 네이버 파쿠르 동호회 오픈.

2006. 8월. 영화 ‘13구역’ 개봉.


2006. 11월9일-12일. 프리잭배 <야마카시 대회> 개최 - 국내 최초 파쿠르 경쟁/대회.

2007. 8월. KBS 수요기획 <야마카시 빌딩 숲을 날다> - 국내 최초 파쿠르 다큐멘터리.


2011. 8월7일. ‘한국 프리러닝&파쿠르 연맹-KFPF’ 결성.

2011. 11월 "우리 아들은 '야마카시' 흉내내다 죽은 것 아니다" 사인 논란.

2011. 11월. 야마카시코리아 팀, KBS 출발드림팀 출연.


2012. 7월. 파쿠르 전용신발 ‘올로’ 브랜드 출시.


2013. 2월13일.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 설립 - 국내최초 파쿠르 교육기관 및 코치 양성.


2013. 5월. 국제공인 파쿠르 지도자 자격과정 오픈 - 국내 첫 파쿠르 지도자 과정.


2016. 3월.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에 국내최초 파쿠르 센터 오픈.

2018. 3월.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 서울혁신파크로 이전 및 공유지 '파쿠르 놀이터' 운영.

2019. 한국 파쿠르 협회 설립. 

2019. 건대입구역, 언더커버 파쿠르 센터 오픈.

2020. 국산 파쿠르 슈즈 브랜드 '트라세' 런칭.


2020. 대한체조협회, 파쿠르 위원회 설치.

2022. 몽촌토성역, 언더커버 파쿠르 센터 확장 이전.


2022. 10월. 대한체조협회, '코리아 파쿠르 챔피언십' 개최. 



[국내 주요 파쿠르 활동 단체 및 개인 현황] 2023 ver. 


  • 글쓴이 : 마스터코치 김지호
  • 참고 자료 :
  1. 파쿠르의 역사 ‘움직임의 재탄생’ 

  2. 파쿠르의 시조 '레이몽드 벨(Raymond Belle)' 

  3. 자연훈련법 창시자 ‘조르쥬 에베르’ 

  4. '야마카시' 명칭유래와 기원  

  5. PARKOUR, 데이비드 벨 자서전 

  6. 경쟁은 파쿠르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파쿠르 선수가 되고싶다면, 당신이 알아야할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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